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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원기자의 ESG 인사이트 물건이 아닌 가치를 팔아라

비누를 팔던 작은 가게는 어떻게 세계가 기억하는 브랜드가 되었을까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 가면 대부분 비슷한 풍경을 만난다.

반짝이는 진열장에 예쁘게 포장된 화장품이 놓여 있고, 그 옆에는 제품의 성분과 효능을 설명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그런데 어느 브랜드의 매장은 조금 달랐다.

커다란 비누 덩어리가 마치 시장의 치즈처럼 놓여 있고, 손님이 원하는 만큼 잘라 판매했다. 샴푸는 꼭 플라스틱 병에 담겨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버렸다. 비누처럼 생긴 고체 샴푸를 만들었고, 아예 포장이 필요 없는 제품을 늘려갔다.

 

영국에서 시작한 화장품 브랜드 러쉬 LUSH다.

처음에는 독특한 매장과 형형색색의 비누가 눈에 들어오지만, 러쉬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 회사가 오랫동안 팔아온 것이 비누와 화장품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러쉬는 동물실험에 반대했고, 불필요한 포장을 줄이려고 했으며, 원료를 어디에서 어떻게 가져오는지도 중요하게 여겼다.

지금이라면 ESG나 가치경영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런데 러쉬가 시작된 1995년에는 지금처럼 기업마다 ESG를 이야기하던 시대가 아니었다.

그들은 ESG가 유행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어쩌면 러쉬라는 브랜드의 힘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화장품 회사가 왜 고래를 걱정했을까

러쉬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보다 앞선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더바디샵을 만든 아니타 로딕이다.

1976년 영국 브라이턴의 작은 가게에서 시작한 더바디샵 역시 화장품 회사였다. 그런데 이 회사는 이상하리만큼 화장품 밖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동물실험에 반대했고 환경문제를 이야기했으며 인권과 공정한 거래에도 목소리를 냈다.

1986년에는 Greenpeace와 함께 고래 보호 캠페인을 벌였다.

화장품 회사가 왜 고래를 걱정했을까.

당시 경영의 관점에서만 보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니타 로딕은 기업을 단순히 물건을 만들어 돈을 버는 곳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기업도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힘을 보탤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생각은 말로 끝나지 않았다.

1987년에는 ‘Trade Not Aid’라는 이름으로 지역 생산자들과 직접 거래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단순히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거래를 통해 생산자들이 스스로 삶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이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더바디샵의 Community Fair Trade의 출발이다.

 

그때 사람들은 더바디샵에서 화장품을 샀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 그 소비는 조금 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나는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회사의 제품을 선택한다.’

‘나는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에 내 돈을 쓴다.’

‘내가 산 제품이 누군가에게 정당한 대가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제품을 사는 일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일이 된 것이다.

여기서 브랜드는 달라진다.

상품에 이름을 붙였다고 브랜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 회사는 이런 회사야’라는 문장이 생겼을 때 비로소 브랜드가 시작된다.

 


사람은 언제나 가장 싼 물건만 사지는 않는다

우리는 소비자를 너무 단순하게 생각할 때가 있다.

가격이 싸면 사고, 품질이 좋으면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격도 중요하고 품질은 더 중요하다.

아무리 훌륭한 철학을 가진 회사라도 제품이 형편없다면 오래 사랑받기 어렵다.

그러나 사람은 언제나 가장 싼 물건만 사지는 않는다.

조금 비싸더라도 좋아하는 브랜드의 제품을 사고, 비슷한 제품이 옆에 있어도 자신이 믿는 기업을 선택한다.

왜 그럴까.

제품을 고르는 순간 그 제품 뒤에 있는 사람과 기업까지 함께 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가격표로는 계산하기 어려운 것이 하나 생긴다.

신뢰다.

신뢰는 공장에서 하루 만에 생산할 수 없다.

광고비를 많이 쓴다고 바로 생기지도 않는다.

오랜 시간 같은 생각을 말하고, 그 말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고, 약속을 지키는 과정에서 조금씩 만들어진다.

러쉬가 오랜 시간 포장 없는 제품을 만들고 동물실험에 반대해온 이유도, 더바디샵이 수십 년 동안 사회적 캠페인을 이어온 이유도 결국 브랜드의 역사 속에 남았다.

그 역사는 경쟁사가 쉽게 베낄 수 없다.

비누는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

샴푸도 따라 만들 수 있다.

가격은 더 싸게 내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기업이 10년, 20년, 30년 동안 무엇을 믿고 어떻게 행동해왔는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ESG를 단순한 사회공헌 비용으로만 보는 것은 너무 아깝다고 생각한다.

잘 만들어진 가치경영은 기업이 오랜 시간 적립하는 신뢰의 통장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어느 작은 기업의 대표를 떠올려보자

대한민국에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대기업도 있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그렇지 않다.

공장 한편에서 20년째 같은 제품을 만들고 있는 대표가 있다.

회사가 어려울 때도 직원 월급부터 챙겼던 사람이 있다.

지역의 어려운 이웃에게 몇 년째 조용히 물품을 보내면서도 그것을 사회공헌이라고 생각해본 적조차 없는 기업도 있다.

좋은 기술을 개발해 놓고도 세상에 알리는 방법을 몰라 거래처 몇 곳에 의존하며 버티는 회사도 있다.

그런 기업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쉬울 때가 있다.

분명히 좋은 이야기가 있는데 아무도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표의 머릿속에만 있고, 오래 근무한 직원 몇 명만 알고 있다.

회사를 소개하는 홈페이지에는 제품 사진과 회사 연혁만 적혀 있다.

‘1998년 설립’

‘2005년 공장 증축’

‘2015년 특허 취득’

그 사이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없다.

어떤 마음으로 회사를 시작했는지,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무엇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직원들과 어떤 약속을 지켰는지, 자신의 기술로 누구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기록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대표가 떠나고 직원들이 바뀌면 그 이야기도 함께 사라진다.

나는 그것이 참 아깝다.

기업에도 인생이 있기 때문이다.

 


ESG는 거창한 곳에서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

ESG라는 말을 꺼내면 중소기업 대표들의 표정이 무거워질 때가 있다.

탄소배출량을 계산해야 할 것 같고, 어려운 보고서를 만들어야 할 것 같고, 큰돈을 들여 사회공헌 사업을 해야 할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공시와 공급망, 환경관리 같은 체계적인 ESG 경영이 중요하다.

그러나 가치경영의 출발점까지 거창할 필요는 없다.

 

대표에게 이런 질문 하나를 던져보면 된다.

“우리 회사가 가장 잘하는 것으로 누구를 도울 수 있을까요?”

건설회사는 집을 고칠 수 있다.

병원은 치료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사람을 찾아갈 수 있다.

식품회사는 따뜻한 한 끼를 나눌 수 있다.

교육회사는 형편 때문에 배우지 못하는 아이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

IT기업은 디지털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을 도울 수 있다.

동네 미용실도 혼자 사는 어르신의 머리를 다듬어 드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를 기부했느냐가 아니다.

그 기업이 가진 것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했느냐이다.

그 순간 기업의 기술과 제품은 단순한 돈벌이의 수단을 넘어 누군가에게 필요한 가치가 된다.

 


“올겨울은 따뜻하겠네요”

가령 집을 짓는 한 중소기업이 있다고 해보자.

회사는 홈페이지에 이렇게 적을 수 있다.

‘사람을 생각하는 기업’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기업이 비슷한 말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기억에는 오래 남지 않는다.

그런데 그 회사 사람들이 어느 겨울, 홀로 사는 어르신의 낡은 집을 찾아갔다고 생각해보자.

오래된 창문 틈으로 찬바람이 들어오고 벽지는 군데군데 떨어져 있다.

직원들이 자신들의 기술로 창문을 고치고 벽지를 새로 붙이고 고장 난 전등을 바꾼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어르신이 한마디 한다.

“올겨울은 따뜻하게 잘 수 있겠네요.”

그 한마디 앞에서는 ‘사람을 생각하는 기업’이라는 광고 문구가 필요 없다.

이미 증명됐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ESG가 가진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보고서의 숫자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 숫자 끝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좋은 일을 했으면 왜 알려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조용히 하면 되지 굳이 기사까지 내야 하느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보여주기 위해 선행을 한다면 오래가기 어렵다.

 

하지만 반대편에서 한번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좋은 기업의 이야기가 알려지면 또 다른 기업이 움직일 수 있다.

한 건설회사가 어르신의 집을 고쳐준 이야기를 보고 다른 건설회사가 시작할 수 있다.

한 식품회사의 나눔을 보고 다른 기업이 참여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을 도운 이야기가 열 사람을 움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자랑이 아니라 기록이다.

얼마를 기부했다는 이야기보다 왜 시작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무엇이 달라졌는지, 그리고 그 일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인지를 남기는 것이다.

 

광고는 끝나면 사라진다.

하지만 기록은 기업의 역사에 한 줄씩 남는다.

그 한 줄이 10년 쌓이면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CCBS는 기업의 ‘좋은 이야기’를 먼저 찾으려 한다

CCBS가 생각하는 가치경영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처음부터 기업에 큰 사회공헌 사업을 하자고 말하기보다 먼저 그 회사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대표는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어떤 고비를 넘어왔는지, 무엇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는지, 어떤 기술과 제품을 만들었는지, 직원들과 어떤 회사를 만들고 싶은지를 듣는다.

그러다 보면 그 기업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보인다.

그 일을 지역사회와 연결하고 실제로 실행한다.

그리고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기사로 남기고 영상으로 남긴다.

시간이 지나 다시 꺼내볼 수 있도록 기업의 역사로 쌓아간다.

 

사회공헌을 먼저 하고 홍보를 나중에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좋아 보이기 위해 좋은 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을 했기 때문에 좋은 이야기가 생겨야 한다.

CCBS가 만들고 싶은 것은 광고 한 편이 아니라 그런 기업의 역사다.

 


러쉬의 비누 한 조각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러쉬의 커다란 비누는 언젠가는 다 잘려 팔린다.

누군가의 욕실에서 사용되고 결국 사라진다.

더바디샵의 화장품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사용하면 빈 용기만 남는다.

제품에는 끝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기업의 이야기는 제품보다 오래 남는다.

환경을 생각했던 회사.

동물실험에 반대했던 회사.

자신의 이익만큼 사람과 사회를 생각하려 했던 회사.

그 기억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는다.

기업들이 ESG에서 배워야 할 것은 어쩌면 복잡한 마케팅 기법보다 이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 우리 제품을 사달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 기업을 믿을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

 

물건을 팔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업은 물건을 팔아야 한다. 그래야 직원의 월급을 주고 투자도 하고 다음 제품도 만들 수 있다.

다만 물건만 팔지는 말자는 것이다.

제품에는 기술을 담고
서비스에는 정성을 담고
기업에는 철학을 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철학이 말에 머물지 않고 누군가의 삶에서 실제 행동으로 나타날 때 사람들은 비로소 그 기업을 다르게 기억하기 시작한다.

좋은 제품은 한 번의 구매를 만들 수 있다.

좋은 가격은 한 번의 선택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좋은 기업이라는 믿음은 사람을 다시 돌아오게 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기업인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남기고 싶다.

당신의 회사가 오늘 팔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품입니까.

서비스입니까.

기술입니까.

그리고 그 제품을 모두 사용하고 난 뒤에도
사람들의 마음에 남을 무언가가 있습니까.

제품은 소비된다.

광고는 지나간다.

하지만 한 기업이 사람과 사회를 위해 진심으로 걸어온 시간은 남는다.

그 시간이 쌓여 신뢰가 되고, 신뢰가 쌓여 브랜드가 된다.

 

물건만 팔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당신의 기업을 선택해야 할 이유까지 함께 만들어가십시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ESG라는 어려운 세 글자를 통해 결국 이야기하고 싶었던 가장 단순한 가치일지도 모른다.

                                                                                  

ESG 실행을 넘어 기록으로.
CCBS가 기업의 선한 영향력을 오래도록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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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8.13 13:24 수정 2026.08.13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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